2023. 6. 24. 09:30ㆍ전시
[전시]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전시 리뷰 in 국립중앙박물관
오랜만에 휴가를 쓰고
사전예약으로 등록했던
영국내셔널갤러리의 명화들을 관람하고왔다.
지금부터 리뷰를 시작하겠다.


성모자와 세례요한, 1510~11년 경, 라파엘로
로마 교외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을 배경으로, 갈대로 만든 십자가를 든 세례 요한이 아기 예수에게 훗날 격게 될 수난과 부활, 신성한 사랑을 상징하는 카네이션을 건냅니다. 섬세하게 표현한 성스러운 인물들 사이의 교감이 돋보입니다. 배경의 건축물과 성모의 모습으로 강조된 두 아이의 손이 화면 중앙에 있으며,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 속 인물들이 배경과 조화를 이릅니다.
이 작품은 전성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인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궁에 자신의 걸작인 <아테네 학당>을 그리던 시기에 그려졌습니다. 가바 남작 조지 캐닝(1778-1840)의 소유였으므로 '가바의 성모'라고도 불립니다.

머큐리, 큐피드와 함께 있는 비너스 (사랑의 가르침), 1525년경, 코레조(Correggio)
전령의 신 머큐리가 다정하게 아들 큐피드에게 읽기를 가르치고, 사랑의 신 비너스는 그 옆에서 우리를 바라봅니다. 신들의 이야기를 빌려 그린 누드에서 이상적인 비례와 사실적인 명암법이 돋보입니다. 비너스는 원래 큐피드를 바라보았으나 지금처럼 우리와 눈이 마주치도록 자세가 수정되었는데, 이처럼 캔버스에서 바로 그림을 고치는 방식은 유화 기법에 능숙한 베네치아 화가들의 특징입니다.

보좌에 앉은 성모자와 네 천사ㅡ 1506~09년경, 퀸텐 마시스(Quinten Massys)
성모의 금빛 보좌와 왕관, 천사들이 연주하는 류트와 하프 바닥의 카펫 등을 정교하게 그렸습니다. 아기 예수의 붉은 산호 목걸이는 그가 홀릴 피를 상징합니다. 성모자 머리 뒤에서 금색 빛줄기가 뻗어 나와 이들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방식은 15세기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사치품이었던 터키산 카펫에 발을 올려놓도록 한 것 역시 성모를 예우한다는 뜻입니다.
사실적인 초상화와 화려한 종교화로 잘 알려진 퀸텐
마시스는 16세기 초반 북유럽 안트베르펜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1594-95년경, 카라바조 Caravaggio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한 소년이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을 도마뱀에게 물린 아픔에 깜짝 놀라 움츠리고 있습니다. 이는 짧은 감각적 쾌락 뒤에 숨어 있는 예상치 못한 고통을 은유한 것으로, 소년의 귀에 꽃힌 장미와 꽃병의 꽃 역시 곧 시들어 사라질 덧없음을 보여줍니다.
카라바조는 '정물을 그리는 일은 인물을 그리는 일만큼 예술적 재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을 직접 관찰하여 그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점은 그의 혁신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초기에는 이 그림처럼 정물화나 일상생활의 장면을 그렸지만 곧 감정적이고 극적인 종교화들을 전문적으로 그리게 됩니다.
카라바조에서 온 미켈란젤로,
천재이자 문제아
카라바조의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입니다.
그의 이탈리아 고향 마을 이름인 '카라바조'를 따라서 카라바조라고 불렸습니다.
카라바조는 그림 실력은 뛰어났지만,
성격이 나쁘고 거칠어서
이곳저곳에서 싸움을 일으키고 다녔습니다. 결국 카라바조는
칼 싸움 끝에 사람을 죽이고 원래 살던
로마를 떠나 여러 곳으로
도망 다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죄를 용서받고 로마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다시
문제를 일으켜 감옥에 갇힙니다.
카라바조는 결국 로마에
돌아가지 못하고 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63세의자화상, 1669년,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
렘브란트는 프로테스탄트 국가였던 네덜란드에서
활동했습니다. 직접 이탈리아에 가본 적은 없지만 판화나 다른 동료로부터 이탈리아 미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640년대 암스테르담 최고의 인기 화가였으나 이 자화상을 그릴 때는 이미 파산한 상태였습니다.
렘브란트가 죽기 몇 달 전 그린 자화상입니다. 나이 들어가는 얼굴에 집중해 물감을 두껍게 발라 얼룩덜룩한 피부, 술이 적어진 눈썹 등을 그렸습니다. 옷과 배경은 얇게 재빨리 칠해서 밝은 빛을 받은 섬세한 얼굴 표정에 주목하게 합니다.
자화상으로 자신을 성찰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노인 초상화를 그리기 위한 회화 기술을 연습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번 명화전에서 이 작품은
영국내셔널 갤러리에
또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독일 나치의 침공으로 부터
위대한 작품들을 보호하기 위해
윈스턴 처칠은 아무도 모를 지하 동굴에
작품들을 숨겨두었다.
하지만 영국 시민들은
영국내셔널갤러리의 텅빈
모습에 정부에 단 1점이라도
전시를 해주어 전쟁으로 불안한
국민들을 위로해 달라는 요청에
전쟁 중에 걸린 유일한 작품이
렘브란트 판 레인의
63세의자화상 이었다.
하루 수천명이 보러 올 정도로
전쟁에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유일한 작품이었다.

4원소 불 The Four Elements: Fire, 요아힘 베케라르
북유럽 안트베르편 출신 화가인 베케라르는 일상적인 장면에 종교적 주제를 담은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이 방에는 4원소인 불, 물, 공기, 휴을 주제로 한 4점 연작 중 <불>과<물>이 전시 중입니다. 각 그림에는 주제가 되는 원소와 관련된 생산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불>에서 그림 속 여성들은 불에 구울 고기를 손질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먼 배경에는 자매인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마르타는 그리스도에게 동생 마리아가 자기의 음식 준비를 돕도록 애기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원소: 물, 1569, 요아힘 베케라르
<물>에 그려진 16세기 안트베르펜의 시장에는 온갖 종류의 물고기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림 속 먹거리는 각각 가장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각도로 배치된 것입니다. 그림의 풍족한 음식들은 실제 관찰을 통해 세심하고 정확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베케라르는 빠르고 간략하지만 효과적인 붓질로 그림을 그려 화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잘 보여줍니다.
먼 배경에 어부가 그물을 끌어올리는 모습은 부활한
그리스도가 사도들 앞에 나타나 많은 물고기를 잡도록 해주었다는 풍어의 기적을 그린 것입니다.

강풍 속 네덜란드 배와 작은 배들, 1658, 빌럼 판 더 펠더(Willem van de Velde)
빌럼 판 더 펠더는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에서 바다 풍경화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배를 정확하게 그린 그의 그림은 당시 배 모습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흰 돛을 날리는 군함의 큰 돛대에는 네멀란드 국기가 달려 있고 고물에는 홀란트주 문장이 불어 있습니다. 앞쪽의 배에 달린 깃발에 화가의 서명이 있습니다.
빌럼 판 더 펠더는 정교한 배를 그린 흑백 드로잉으로
유명한 아버지 빌럼 판 더 펠더(1610/1-1693)에게서 그림을 베웠습니다. 판 더 펠더 가족은 1672년, 프랑스의 침략으로 암스테르담에 경제 위기가 오자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18세기 영국에서 바다 풍경화가 발달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베네치아 카나레조 입구, 1734-42년경, 카날레토 (조반니 안토니오 카날) Canaletto
카날레토는 베네치아 모습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그린 풍경화로 유명했습니다. 그랜드 투어가 유행한 시기, 이탈리아에 온 영국인들은 오늘날 여행 기념품으로 그림엽서를 사듯 그의 풍경화를 구입했습니다. 그림 속
장소는 지금도 인기 있는 관광지입니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 카나레조 운하의 입구를 그린 것으로 인기가 좋아서 카날레토와 그의 공방에서 반복해서 제작했습니다. 차가운 저녁의 빛과 열은 분홍색 구름이 있는 하늘은 1740년대 전반 그려진 카날레토의 그림에 많이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형제, 1638년경, 안토니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그림 속 소년들은 영국 귀족인 3대 레녹스 공작의 아들들로, 왼쪽이 형인 존 스튜어트, 오른쪽이 동생 버나드 스튜어트입니다. 당시 18세, 17세에 불과했지만 귀족의 거만함이 느껴집니다. 두 사람의 자세와 호화로운 옷은
이들의 부유함과 높은 신분이 돋보이도록 계산된 것입니다.
반 다이크는 스승 루벤스와 함께 17세기 북유럽 플랑드르를 대표하는 화가로, 이후 영국에서 찰스 1세와 왕실 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등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화가 특히 16세기 티치아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고급 옷감의 반짝임과 감촉을 아름답게 표현하여 인기가 높았습니다.

찰스 윌리엄 램튼 (레드 보이), 1825, 토머스 로렌스 (Sir Thomas Lawrence)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레드 보이 작품이라고
생각 될 정도로 화려한 색감 생동력있는 표정과
고고하고 매혹적인 아이의 모습에 아이와 어른을
떠나 사람이 고귀하다라는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토머스 로렌스는 17세기 반 다이크, 18세기 게인즈버러와 레이놀즈의 뒤를 잇는 영국 대표 초상화가로, 특히 어린이를 그린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이 작품은 1967년 영국 우표에 실린 최초의 그림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는데, 1대 더럼 백작이 자신의 아들이 예닐곱 살일 때 주문 제작한 것입니다. 소년은 1831년, 열세 살 나이에 결핵으로 죽고 말았기에 이 그림은 그를 추억하는 소중한 작품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루소(1712-1778)의 주장처럼 아동기를 특별한 시기로 여기기 시작한 당시 관점과 자연의 숭고한
힘에 대한 낭만주의적 관심을 담고 있습니다. 로렌스는 놀 자유가 있는 어린이가 최고의 스승인 자연의 가르침을 받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도금된 액자는 처음부터 그림과 함께 제작되었는데, 로렌스가 직접 액자 제작가 조지 모란트(1770-1846)에게 주문한 것입니다.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이별, 1837년 이전,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그리스 신화의 헤로와 레안드로스 이야기를 그린 그림입니다. 비너스의 사제인 헤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헬레스폰트 해협의 도시 세스토스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해협의 동쪽에 사는 레안드로스와 사랑에 빠졌고, 매일 밤 그녀를 보려고 바다를 헤엄쳐 오는 그를 위해 등불을 들었습니다. 어느 날, 바람에 등불이 꺼져 레안드로스가 바다에서 죽자 헤로 역시 죽음을 택합니다. 화면 중앙 테라스에는 날개 달린 큐피드가 등불과 횃불을 들고 있으며, 결혼의 신 히멘이 그 옆에 서 있습니다.
테라스 아래 바닷가 어둠 속에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헤로와 레안드로스가 보입니다. 터너는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에서 보이는 균형 있는 고전적 구도, 감성적 색채 그리고 대기의 효과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븟꽃 Irises, 1914-17년경,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이번 전시가 좋은 점은 우리가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모네의 작품도 하늘어지게 피어난 붓꽃의 아름다움을
대형 캔버스에 잘 녹여 그가 눈으로 보고 느꼈던
영감을 잘 표현했다.
모네는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풍경화가입니다.
이 작품은 모네가 1914년에서 1917년 사이에 그린 붓꽃 연작 20점 중 하나로 지베르니에 있는 그의 정원을 그린 것입니다.
붓꽃은 모네가 가장 좋아한 꽃이었습니다. 붓꽃 연작은 대부분 높이 2미터의 대형 작품으로, 매우 독특하고 새로운 시점을 보여줍니다. 모네는 두껍고 대담한 붓으로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 물감을 칠했고 캔버스의 흰 바탕이 드러난 채로 내버려두기도 했습니다. 이는 당시 모네가 백내장으로 시력이 온전하지 못했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모네가 사망했을 때도 작업실에 있었으므로 모네가 작품을 완성했는지 아니면 미완성으로 남겨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 1890년, 빈센트반 고흐 (Vincent van Gogh)
내가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으로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전에 그렸던
작품이다.
예전에 반고흐의 일생과 작품들에 대해 1~3부작
으로 포스팅했었다.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 작품을 감상하니 그의
일생과 작품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1부 고흐의 일생
[전시] 고흐, 향기를 만나다(빈센트 반 고흐, 1부 고흐의 일생) 이번 포스팅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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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는 오늘날 인기 있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이지만 살아 있을 때는 그림을 거의 팔지 못했고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은 반 고흐가 정신병이 악화되어 남부 프랑스의 생 레미 마을 근처의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린 그림입니다. 그는 죽기 얼마 전인 1890년 5월 4일경, 동생 테오에게 '그림이 잘 그려진다. 새롭게 자른 잔디 모습을 두 작품이나 그렸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이 그림이 여기서 말한 두 작품 중 하나로 추정됩니다.
반 고흐는 잔디와 잡초 위로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담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감정을 담은 표현적인 밝은 색채와 유화물감을 겹쳐 두껍게 칠하는 임파스토 기법이 특징입니다.

카페 콩세르의 한구석, 1878-80년경,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대상을 직접 보고 그리기를 좋아한 마네는 근대적인 삶의 모습을 주제로 택했으며 물감을 자유롭게 사용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여겨지지만, 정작 마네 자신은 인상주의 전시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평생 살롱전에서 인정 받기를 원했습니다. 마네는 잔을 여러 개 들고도 맥주 한 방울도 홀리지 않고 서빙하는 종업원들의 솜씨에 감탄해서 그중 가장 뛰어난 종업원에게 작업실에 와서 모델이 되어달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보호자'도 함께 가서 돈을 받는 조건으로 마네의 제안을 수락했는데, 그림 속 파란 셔츠를
입고 담배를 피우는 남성이 그녀의 보호자입니다.

기울어진 나무, 1860-65년 경,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코로는 호수와 기울어진 자작나무가 있는 이와 유사한 풍경을 여러 점 그렸습니다. 주황색 붓질 한 번으로 표현한 여성의 모자에서 볼 수 있듯이 인물들을 단 몇 번의 붓질로 간략하게 그렸습니다. 화면은 아주 작은 붓 터치들로 채워져 반짝이는 듯한 효과를 주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형태가 흐릿하게 사라지는 듯 합니다.
코로는 야외에서 풍경을 직접 스케치한 뒤 이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풍경화는 19세기 후반 풍경화가들, 특히 인상주의자들이 빛을 표현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금까지 유럽의 거장들의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그린 명화를 감상하셨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서서히 줄어들고, 사람에 대한 관심은 커집니다.
무엇보다도 그림은 권력을 가진 이들을 위한
수단에서 평범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예술로
변해 갑니다. 이는 그림에 나타난 변화이기 이전에
그림이 그려진 시대를 반영한 것입니다.
오늘날 예술을 만나는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예술을 창작하고,
감상하고, 평가합니다. 특별한 존재가 독점한
수단에서 모두를 위한 예술로 변화하는 과정의
끝에 우리도 함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사람을
향해 가는 화가의 시선을 따라 예술이 우리 결에
오기까시의 여정을 함께하셨기를 바랍니다.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총 평
한마디로 최고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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